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나무의 발성법/박완호 시집

Beyond 정채원 2025. 4. 10. 21:54

 

 

 

홀수
 
 
 
짝을 짓는 사람은 그때마다 살아 있고, 게임에서처럼
 
죽은 사람의 숫자는 언제나 홀수, 사과도 배도 차가워진 부침개까지도 셋 다섯 일곱…… 홀수는
 
죽음 쪽에서 건너오거나 죽음 쪽으로 다가서는 발소리
 
홀수와 홀수가 만나 짝수가 되는 건 이곳의 일, 거기서는 홀수의 합은 무조건 홀수,
그건 어쩌면
 
끝내 홀로 남고 마는 인생의 상수 같은 것, 홀수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 때문이지
 
바람은 홀수로만 불고 꽃들도
홀수로 피고 지고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아도
결국은 홀수,
그러니까
 
홀짝의 마무리는 어차피 홀수인 셈이지

 

 

 

   게릴라

 

 

   끊긴 허리띠처럼 뒤틀려가며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물뱀들, 위아래가 따로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물살 따라 모든 게 한순간에 뒤집히고 말 혁명전야의, 엇갈리는 꿈의 능선을 끼고 정면으로 마주친 게릴라들, 내일 없는 오늘이 아름다운 까닭을 더는 묻지 않는다. 눈앞을 가로막으며 탁성으로 솟구치는 물기둥의 돌이킬 수 없는 반란, 나는 거기서 그만 꿈의 힘줄이 끊어지고 만다. 물뱀들이 머릿속을 휘저어댈수록 가팔라지는 숨결 속, 몰래 꿈의 능선을 비껴가려다 들켜버린 게릴라들. 

 

 

 

 

박완호 시집 《나무의 발성법》, 시인동네 시인선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