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언
정한용
뒷산 숲에 까치가 돌아왔다. 오늘 아침 보니 모두 다섯 마리.
겨우내 보이지 않더니, 봄빛에 홀려 기억을 거슬러 돌아왔나 보
다. 다섯 번째 혹은 여섯 번째 감각이 일깨워 주었을 수도 있겠
지. 무딘 내 판단으로는 알 수 없는 일. 누구에게나 가슴이 시릴
땐 숨어들고 싶은 곳이 있으리라. 누구도 찾지 않는 구석이라도,
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방이어도 좋다. 투명해서 자신에게만 보
이는 영역이라면 다 좋다. 울어도 흔적 없이 눈물을 말릴 수만
있다면, 비록 사랑이 고요히 가라앉아 상처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해도, 상관없는 일. 그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다 드디
어 멈출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돌아가도 무탈할 때가 되는
것이다. 두 마리였던 까치가 다섯이 되고, 모든 존재는 껍질을
벗게 된다. 봄이니까, 봄이 왔으니까, 봄이 말하고 있다.
정한용 시집 《희망이라는 절망》, 청색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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