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
배용제
울컥, 쏟아지고 싶은 그런 세계가 있다
또 그런 예감이 속보처럼 밀려올 때
아아 비릿한 비명을 네게 쏟아내던 초콜릿 모텔 창 너머
곧 강물이 넘칠 거라는 뉴스가 흐르고
제로마트 처마 밑 젖은 사내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또 누르다
팅팅 불은 지문의 소용돌이 속으로
천 개의 혀와 천 개의 발자국을 밀어넣는다
넘치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는 세계
구름의 모퉁이에서 손목을 긋는 각오로 뛰쳐나오는 울음들
더 이상 쏟아질 몸이 없을 때까지
억장이 무너질 때까지
허우적거리는 천 개의 혀와 천 개의 발자국은
아무 날의 음악처럼 흩날리다 돌아보다 희미해진다
서로가 파놓은 웅덩이에 그림자를 밀어넣고 헐떡거리다
쏟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세계
우리는 정말 이게 다일까요?
너는 묻고,
폐허가 되어 잠든 네가 뒤척일 때,
너를 무너뜨리며 흘러간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비명과 입술과 핏발 선 눈빛이 남긴 잔해처럼 우두커니 서서
우리의 막막한 날을 진저리친다
사내와 너와 나와 불빛들과 먼 어둠 속의 짐승들
어느 까마득한 날의 잔해처럼 우두커니,
무게를 견디지 못해 쏟아진 구름의 자세로 뾰죽하게.
—《시와 반시》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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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제 /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97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이 달콤한 감각』『다정』.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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