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스크랩] 은둔자 / 하린

Beyond 정채원 2018. 7. 10. 06:07

은둔자

 

   하 린

 

 

 

지하실이 나의 신앙인 것은 매우 적절하다

층간 소음은 생각을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집주인의 도덕과 윤리는 흡착률이 좋다

 

본능적으로 우린 지하실에서 지하실을 잊는다

고상한 천장을 상상하며 창문을 쳐다보지 않는다

 

위층 여자를 나는 이불 삼아 덮는다

여자의 꿈이 내 안으로 스며들 때까지

불면 위에 불안을 포갠다

 

산다와 살다와 살아지다의 차이점을 알려고 할 필요없다

그 모든 것은 악몽으로 치환되고,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사물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암막 커튼을 치고 모든 소리 잠그지 않은 것에 대해

꿈속에서 후회한다

 

미세한 꿈틀거림만 있어도 독백은 나를 참견한다

어둠을 적당히 방치할 순 없는 건지

방치를 끝까지 사랑할 순 없는 건지

 

친애하는 은둔이여!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되어 내리길

무작정 쏟아지길

 

나를 완벽하게 은닉하기엔 손바닥만한 창은 충분하지 않고

나를 호출하기엔 신들은 한가롭지 않으니

쇠창살처럼 단호하게 아름답게 꽂혀주길……

 

 

 

             ⸻계간 시와 반시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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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2008시인세계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서민생존헌장, 연구서정진규 산문시 연구.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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