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짐작을 넘어/유병록

Beyond 정채원 2019. 4. 1. 01:35



짐작을 넘어


유병록



죽은 이를 마중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현관문을 열고 나온 아내가 한 움큼 소금을 뿌린다

드물게 미신의 세계속으로 들어갈 때다


가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녀오는 일 있다

그곳은 대개 상중(喪中)이다


나는 짐작한다

그들이 지닌 고통의 무게를

슬픔의 크기를

울음소리의 높이를


그러나

하나의 몸으로 두 개의 마음 거느리는 일 쉽지 않으니

내 마음 오래 비워둘 수 없으니


돌아오는 길에

다른 이의 마음 떨쳐버리기 위해

한동안 바람을 쐬다가


조문 다녀온 이에게 소금을 뿌리는 건

불길한 기운을 쫓으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고작 죽은 자의 영혼을 쫓는다는 이유로

한때는 귀하디귀하였다는 소금을

한 움큼씩이나 내버리는 풍습이 생겼을 리 없다고 믿는다


천천히 썩어라

천천히 사라져라

그래서 소금을 뿌리는 것이라 믿기로 하는데


바람에 휩쓸려가지 않는 기운이 있다

망토처럼 나를 둘러싸고 물러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데리고 내 마음으로 돌아온다


짐작을 넘어

불길한 기운 속으로 들어가 앉는다


쓴다

일인칭으로 쓴다

조문객이 아니라 상주가 될 때까지



『시산맥』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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