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을 넘어
유병록
죽은 이를 마중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현관문을 열고 나온 아내가 한 움큼 소금을 뿌린다
드물게 미신의 세계속으로 들어갈 때다
가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녀오는 일 있다
그곳은 대개 상중(喪中)이다
나는 짐작한다
그들이 지닌 고통의 무게를
슬픔의 크기를
울음소리의 높이를
그러나
하나의 몸으로 두 개의 마음 거느리는 일 쉽지 않으니
내 마음 오래 비워둘 수 없으니
돌아오는 길에
다른 이의 마음 떨쳐버리기 위해
한동안 바람을 쐬다가
조문 다녀온 이에게 소금을 뿌리는 건
불길한 기운을 쫓으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고작 죽은 자의 영혼을 쫓는다는 이유로
한때는 귀하디귀하였다는 소금을
한 움큼씩이나 내버리는 풍습이 생겼을 리 없다고 믿는다
천천히 썩어라
천천히 사라져라
그래서 소금을 뿌리는 것이라 믿기로 하는데
바람에 휩쓸려가지 않는 기운이 있다
망토처럼 나를 둘러싸고 물러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데리고 내 마음으로 돌아온다
짐작을 넘어
불길한 기운 속으로 들어가 앉는다
쓴다
일인칭으로 쓴다
조문객이 아니라 상주가 될 때까지
『시산맥』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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