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제4시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짝눈의 세계관을 읽다 (알라딘 리뷰)

Beyond 정채원 2019. 10. 17. 18:52



정채원 시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짝눈의 세계관을 읽다

                                                


   겹눈을 가진 사람의 슬픔과 짝눈을 가진 사람의 슬픔은 어떻게 다를까. 이미 사물의 이면을 너무 많이 봐버린 (혹은 봐버렸다고 생각하는) 겹눈의 사람은 쉽게 허무주의에 안착하고 조로한다. 어찌보면 그의 슬픔은 나르시시즘적인 것이지 결핍의식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왼쪽 눈이 본 것과 오른 쪽 눈이 본 것이 격차가 큰 사람은 자신에게서 결핍과 불구성을 본다.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 하는 불안은 사물 너머를 파악하는 데에 안간힘을 쓰게 한다. 자기 눈을 넘고 자기 키를 넘어서서 타자에 닿으려는 열망을 멈출 수가 없다. 스스로의 동력으로 도는 팽이처럼.

   정채원 시인의 시에는 이런 짝눈의 세계관이 작동한다. 그래서 시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작은 키의 깽기발이 보이며, 달관의 조로현상이 끼여들지 못한다. 그녀의 시는 나이를 알 수 없다. 젊다.

   짝눈은 사물을 흐리게 보게 하는 동시에 이쪽과 저쪽의 차이와 균열을 알게 한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진짜와 가짜, 일상과 초월, 앞과 등, 기계와 인간....등이 동시에 혼재하는 경계에 서 있게 한다. 그녀가 타자인 세상과,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그러하며, 심지어 자신과 맺는 관계에서도 그렇다. 상이하는 것들로 들끓고, 그것들은 서로 불통하며,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다. 그럴수록 열망과 애씀만 커진다.

   그러나 그런 소통에의 노력은 늘 실패하기로 되어있다. 그녀가 작은 키와 짝눈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자기애에 빠지기 전에는! 심지어는 시 <닫히면 그만인 문>에서처럼 우연의 습격이 그 노력을 무산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거기에 그녀의 시가 주는 감동이 있다.

   그녀가 펴낸 시집들의 제목들- <<나의 키로 건너는 강>>,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일교차로 만든 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만 보아도 그녀의 시가 천착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나온 시인의 네번째 시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에 수록된 시 두 편.

<혹등고래>

이따금 몸을 반 이상 물 밖으로 솟구친다
새끼를 낳으러
육천오백 킬로를 헤엄쳐온 어미 고래

물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거
살아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그곳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
새끼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그 혹등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
그것도 더 크면 알게 되겠지

어미는 새끼에 젖을 물린 채 열대바다를 헤엄친다
그런 걸 알게 될 때쯤 새끼는
극지의 얼음 바다를 홀로 헤엄치며
어쩌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도 있겠지

코고는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가 섞여 긴 노래가 되고

예언처럼 멀고 먼 주름투성이 바다
뻔하고 모호한
젖은 몸뚱이는

이따금 물 밖으로 힘껏 솟구친다
다른 세상을 흘낏 엿보면서
그렇게 숨을 쉬면서


<닫히면 그만인 문>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 알베르 카뮈

십 년간 부은 적금을 타고, 세 배로 뛴 주식을 어깨에서 팔고, 은행 융자를 낀 22평형 아파트 진금을 치르고, 내일부터 칠과 도배를 주문해 놓고 귀가중, K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후 십오 일 된 S는 선천성 심장판막증.

구십이 넘은 노모는 천식이 있어도 잘 견뎌왔는데 메르스를 이기진 못했다.

T는 삼수끝에 S대에 합격했다. 재수시절 술도 배우지 못한 그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기도가 막혀버렸다.

기도는 종종 막힌다. 기도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화살기도로는 뚫지 못한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한 번 꽝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다신 열리지 않는다. 그만?

시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문학동네,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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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같은 시집에서 짝눈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시 한 편을 더 읽는다.

<튜링테스트>*

내 눈동자 속으로 한참 걸어 들어온 뒤
눈을 심하게 깜빡이던 아수라백작은
내 목덜미를 킁킁거리다 조금 뜯어간다

네 피는 얼마나 소란한가
보고야 말겠다고
차가운 살점을 뜯어 현미경을 들이대지만

이쪽 바다 고기들은
자연미끼를 잘 안 물지
지금껏 인조미끼만 물어 왔으니까

야생꿀, 토종꿀, 백년초꿀
모두 진품만 특별판매합니다
가짜를 먹고도 불끈불끈하는 가짜들
죽어도 죽지 않는 그들이 오리지널 진품이라고

더없이 평범한 아빠미소의 이웃집 아저씨가
토막살인자로 밝혀지는 마감뉴스가 끝나도
잠은 밤새 토막을 치고

오른쪽 다리를 차이면
왼쪽 뺨으로 걸어가는 로봇이 나오는 그 광고도
일요일마다 신물이 올라온다

인공눈물과 카페인을 섞어 마신 까닭일까
커피는 오늘도 뇌를 속이고
술을 더 마시거나 아니면 차를 몰고 바다를 건너겠다고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모두 달을 모자처럼 쓰고 다니는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거야
아수라백작은

몇 번을 읽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음 사용설명서들만 찾아 읽는다

* Turing test



튜링테스트란 기계인간(인공지능)이 진짜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재는 테스트다. 그러나 이 튜링테스트를 위한 척도로서의 인간은 과연 '인간다운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가짜 약을 먹고 비인간다운 짓을 하고 사는, 거짓 눈물을 짓는 사람들이 과연 기계인간보다 더 '진짜'일까? 그러니 기계가 '마음사용설명서'를 아무리 읽은들 인간과 소통하기란 불가능하다.

시인의 시는 이런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재치있게 다룬다. 난해하긴 하지만 자꾸 수수께끼 풀듯 자꾸 읽게 된다. '튜링테스트'라니! '벌레구멍'도 아울러 권한다. (그게 '웜홀'이란다.)


* 추기 2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어머니, 저는 오늘도 돌아요
압력 밥솥의 추처럼
얼음판 위를 헐떡이는 팽이처럼
터질 듯한 마음의 골목골목
팽글팽글 돌아요, 돌아야 쓰러지지 않아요
당신의 경전을 맴돌면서
저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어머니
신대륙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얕은 곳 너머 갑자기 희망이 깊어지는 곳
그러나 희망봉 근처엔 죽음의 이빨
백상어가 헤엄쳐 다닌다지요
가장 안전한 곳은 가장 위험한 곳
상식의 말뚝에 한쪽 발을 묶고
나머지 한 발로 절뚝절뚝
기상부터 취침까지
일상의 풀밭을 뱅글뱅글 돌아요
소등 뒤에도 전갈자리 사수자리 돌고 돌다
아주 돌아 버려요
아니, 저는 더 이상 돌지 않아요
그래도,
그래도 지구는 돌지요

제2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민음사, 2008)중에서




알라딘 북리뷰  https://blog.aladin.co.kr/memoiren/11178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