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탈옥/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1. 2. 19. 13:05

  탈옥

 

 

   8개월 넘게 침대 밑으로 땅굴을 파고 감옥을 탈출한 사형수가 탈옥한 지

한 달 만에 목을 매 자살했다.

 

   다시 수감될 것을 겁내서였을까?

   아니면 더 이상 팔 땅굴이 없음에 절망한 것일까?

   땅굴을 파봤자 더 이상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사실,

   가봤자 다 거기가 거기라는 사실, 손바닥 안이라는 사실

 

   감옥 안이 벼랑이고

   감옥 밖이 더 벼랑이고

 

   조마조마 땅굴을 팔 땐 목표가 있고

   더 팔 땅굴이 없을 땐 목표마저 없고

 

   감옥 안은 유리구슬 속이고

   감옥 밖은 유리구슬에 비친 유리구슬 속이고

 

   구슬 속에도 이따금 꽃 피고 새가 날개 치는

   지구의 땅굴은 파봤으니

   이젠 다른 별로 출장 갈 차례?

 

 

  《文학史학哲학》 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