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
8개월 넘게 침대 밑으로 땅굴을 파고 감옥을 탈출한 사형수가 탈옥한 지
한 달 만에 목을 매 자살했다.
다시 수감될 것을 겁내서였을까?
아니면 더 이상 팔 땅굴이 없음에 절망한 것일까?
땅굴을 파봤자 더 이상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사실,
가봤자 다 거기가 거기라는 사실, 손바닥 안이라는 사실
감옥 안이 벼랑이고
감옥 밖이 더 벼랑이고
조마조마 땅굴을 팔 땐 목표가 있고
더 팔 땅굴이 없을 땐 목표마저 없고
감옥 안은 유리구슬 속이고
감옥 밖은 유리구슬에 비친 유리구슬 속이고
구슬 속에도 이따금 꽃 피고 새가 날개 치는
지구의 땅굴은 파봤으니
이젠 다른 별로 출장 갈 차례?
《文학史학哲학》 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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