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꽃 피는 단춧구멍들/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1. 3. 13. 23:33

   꽃 피는 단춧구멍들

   정채원

 

 

   단춧구멍이 모자라네 어디서부터 잘못 끼운 걸까 중간부터 아님 처음부터 그래 처음부터 다 풀어 처음으로 돌아가 백만 년 전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울고 처음부터 다시 싸워 처음부터 다시 사랑해 이미 사라져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 무너진 계단을 다시 일으켜 세워 다시 껴안아 다시 뛰어내려 다시 시작해 처음부터 다시 단추를 끼우기 시작해 둘 셋 오백 끼워도 끼워도 끝이 없더라도 세상이 하나의 이글거리는 단춧구멍일지라도 다시 기어가 다시 엎드려 다시 고백해 내가 그 바람을 잘못 엎질렀어 내가 그 꽃병을 잘못 사랑했어 백만 년 전부터 그 무덤을 내가 발로 찼어 내가 우그러뜨렸어 내가 깨뜨렸어 너의 노래를 내가 버렸어 너의 편지를 내가 구겼어 읽지도 않은 너를 강물에 던졌어 낮이고 밤이고 조각조각 찢어 떠내려 보냈어 단춧구멍을 다 막았어 다 어긋났어 아무 것도 짝이 맞지 않아 천 개가 남고 만 개가 모자라 다시 돌아가 백만 년 전으로 돌아가 돌아갈 수 없으니까 돌아가 단추를 다 풀어 천 번 죽기 전부터 만 번 태어나기 전부터 그래 처음부터 다시 끼워

 

 

 

  《시인시대》 202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