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액땜/정숙자

Beyond 정채원 2022. 9. 1. 20:47

   액땜

 

   정숙자

 

 

   죽은 자는 울지 못한다

   아니다 죽은 자는 울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 마당에서) 죽은 자는 산 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푸

른빛 내뿜어야 할 벙어리이기 때문이다.  몇 곱은 더 실다운  삶을

울어야 할 피리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목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

도, 접목할 수도 분지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언어는 석상의 눈물에 불과하지만

   석상의 눈물은 드넓은 깃발 흔드는 팔과

   그 깃대 아래 모인 발들의 쾌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뛸 수도 없는ㅡ죽은 자들

   날 수도 없는ㅡ죽은 자들

   길 수도 없는ㅡ죽은 자들

 

   전철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빈 병, 아무래도 저 병은 무

진장 신났나보다. 바다  하늘  들판이 꼭 바다 하늘 들판이어야  할

까닭이 뭐냐 마구 구른다. 킬킬킬킬킬 깨진 얼굴 비친다. 난생처음

자유다 비웠다 한다. 덜덜 턱 멎고 구른다.

 

   간신히 태어났고

   겨우 살았고

   가까스로 죽어가는 자들

   그러나 살아있는, 저 빈 병 바라보는 관자놀이들

 

   이튿날 아침이면 창틀에게 신발에게도 타이른다

   더 험한 탈 만났을 수도 있어

   진짜! 더 새카만 털 대낄 수도 있지

   그리고 또 하루 않는다, 울지

 

 

   시집 《공검 & 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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