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구치소
정혜영
벚꽃이 피고 있다
벚꽃이 지고 있다
이펜하우스아파트 상공으로 대한항공 비행기가 천천히 날아간다 구치소 앞의 현수막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현수막 아래로 걸어 들어오는 젊은 여자의 청바지며 해맑은 낯빛
457, 한 사람이 숫자로 호명되고
자신의 죄명조차 모르는 한 젊은이
면회시간을 기다리는
그의 발걸음은 초침과 분침 사이를 숨 가쁘게 오간다
그의 옷차림은 아직 겨울이고
구치소 상공으로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햇빛 속을 날아간다 시시각각 사라지는 푸른 하늘빛, 457의 손끝이 허우적거린다
구치소 상공을 지나가는 탑승객은
제 마음에 감옥 한 채 지닌 채
창밖을 내다보고
457과 비행기의 13A, 구치소 앞마당의 나, 세 사람이 하나의 풍경 안에 갇혀 있다
내 마음의 감옥을 열면
거기 앉아있는 얼굴, 낯익은 듯 낯선 수의를 입고 있다
나는 나를 의심하고, 눈앞에 솟은 아파트의 창틀을 의심하고, 오늘처럼 눈부신 봄날을 의심하고, 룸밀러에 비친 나의 눈을 의심하고
노란 민들레가 잡초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떨어진 단추처럼 집 나온 치와와가 노란 향기에 코를 박고 있다
《예술가》,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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