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짐을 가지고 오지 마
짐을 항상 너무 많이 가지고 오잖아
짐을 둘 데도 없잖아
거리를 걸어가다 말고 같은 시간 같은 길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또 말다툼을 한다.
장소부터 말해봐
어느 국수집으로 가는 건지
아까 본 베트남 쌀국수는 사거리 번화가에 있고
베트남 쌀국수는 어디에도 있다. 다음 골목에도
베트남 쌀국수 계속 베트남 쌀국수
어느 집으로 갈 건지
베트남 쌀국수 집엔 사람이 많아
항상 많잖아
테이블이 몇 개 붙어 있는 좁은 집인데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 없잖아
너는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는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데를 검색해보자
네가 좋아하는 숙주나물을 잔뜩 얹어주는 곳
우리는 설익은 나물을 씹으며 평소의 표정을 지을 거야
먼 곳을 바라보며 가능하면 보편적인 표정을
보편적인 나물 앞에서
근데 거기는 자주 갔던 곳이야
자주 만나지도 않았잖아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길에서 맞춰지지 않는 말을 계속한다.
번갈아 대화를 놓친다. 대화가 아니라 애원을 한다.
내일 가자고 했잖아
거기는 아름다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잖아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가스통을 싣고 달려간다.
하나 둘 셋 넷
가스통을 너무 많이 싣고 간다.
위험한 오토바이 위험한 가스통
서울은 거의 모든 가구에서 도시가스를 사용한다.
시집 《도시가스》, 문학과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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