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어둠은 어디로 넘어지나/김영

Beyond 정채원 2024. 9. 7. 19:21

   어둠은 어디로 넘어지나

 

  김영

 

 

   오래전 넘어진 적이 있는

   밤의 귀퉁이에

   한 방울 핏자국 같은 불이 켜 있다.

 

   몇 번쯤은 그 핏자국 같은 불빛 속으로

   찾아들곤 했었지만

   넘어진 밤의 위치는

   사람이 주저앉은 자리다.

 

   더듬거리던 것들을 쏟아버린 사람, 혹은 온통 자신이 쏟은 낭

패를 주워 담고 있는 사람이어서 밝은 한낮 어디쯤에서 넘어진

일들은 캄캄한 밤에 물어야 소용 없다.

 

   어떤 낮이든 결국은 밤이 된다.

   또 어떤 밤도, 밤의 어떤 곳도 낮이 되고

   낮엔 또다시 너무 분명해져 부끄럽다.

   그러니 밤의 위치도 낮의 좌표도

   모두 자신이 자처한 일이다.

 

   이상한 것은, 밤에 넘어진 상처에선

   붉은 피가 흐른다는 것이고

   낮에 넘어진 상처에선

   거뭇한 멍이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낮엔 햇살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지만  어둠은 너무 감감

해서 밤의 어느 쪽으로 넘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 어둠은

슬프다,라고  한다면 내가 어느 쪽으로  무너졌는지 모르겠다고

기꺼이 맞장구치며 딸깍, 스위치를 누를 것이다.

 

   그때 불빛 같은 핏방울이

   어둠의 이마에서 배어 나올 것이다.

 

 

   《유심》 2024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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