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여기, 오독이 내리고/차영미 시집

Beyond 정채원 2025. 1. 12. 01:03

 

 

미로와 미궁사이

 

 

기다리는 척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심장 소리가 들리고
화면이 열리는 소리

낯선 명령어를 연습한다
성급함을 자르고 오타 속으로
가끔 그는 친절하고

나는 자주 길을 잃는 손가락
기억은 찾아오지 않지
불안은 나의 무기였으나

소리를 삭제하고 손톱을 자른다
싫어하는 너를 위해 비껴가는 소문으로

오래된 비문을 숨긴다
소음이 합쳐지는 사이 단어를 걸러내고

오류를 쏟아낸다 모니터는
“저장 공간이 부족합니다”

화해를 시도하고
삭제를 반복하고

어제의 심야에 도달한다
진동을 닫는다 몸속에 숨은

 

 

 

차영미 시집 《여기, 오독이 내리고》, 시와세계 시인선 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