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눈에 뜨이지 않는 것들/이장욱

Beyond 정채원 2025. 4. 27. 16:12

 

   눈에 뜨이지 않는 것들

    ​이장욱

 

 

   당신,

 안 보는 사이에 뭔가 달라졌다.

 미간이 넓어졌나.

 말투가 좀 외국인 같네.

 왜 유령을 좋아해.

 무엇이 당신을 수정하고 있다.

 죽은 사람의 책상 위에 앉은 먼지 같은 것이

 마음의 물속에 가라앉은

 쇠못 같은 것이

 또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옛 일

 자꾸 콕콕 찌른다.

 어제의 거울과 오늘의 거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길에서 자꾸 외국인을 만나고

 피부에는 알러지가 생기고

 죽은 사람의 책상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당신,

 눈에 뜨이지 않게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어딘지 이상한 미소를 짓고

 나는 의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고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안 보는 사이에

 내가 당신을 수정했는지도 모르지.

 책상 위에 유령의 물글씨가 적혀 있는지도

 조금씩 다른 의미들이 글씨에 스며들고

 조금씩 발음이 어려워지고

 조금씩 외국어에 가까워지고 마침내

 오래된 기도문처럼

 깊다.

 당신,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눈에 뜨이지 않게

 당신이 아니다.

 눈에 뜨이지 않는 것들의 시간이 쌓이자

 나는 당신에게 조금씩

   일치하고

이장욱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음악집』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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