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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네 번째 서랍

[스크랩] 김행숙의 「목의 위치」감상 / 김정환

Beyond 정채원 2014. 12. 11. 22:07

김행숙의 「목의 위치」감상 / 김정환

 

 

  목의 위치

 

     김행숙(1970∼ )

 

 

 

   기이하지 않습니까. 머리의 위치 또한,

 

   목을 구부려 인사를 합니다. 목을 한껏 젖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당신에게 인사를 한 후 곧장 밤하늘이나 천장을 향했다면. 그것은 목의 한 가지 동선을 보여줄 뿐, 그리고 또 한 번 내 마음이 내 마음을 구슬려 목의 자취를 뒤쫓았다는 뜻입니다. 부끄러워서 황급히 옷을 입듯이.

 

   당신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면 목은 어느 방향을 피하여 또 한번 멈춰야 할까요, 밤하늘은 난해하지 않습니까. 목의 형태 또한,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 대하여.

 

   목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긴 식도를 갖고 싶다고 쓴 어떤 미식가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식도가 길면 긴 만큼 음식이 주는 황홀은 천천히 가라앉을까요, 천천히 떠나는 풍경은 고통을 가늘게 늘리는 걸까요, 마침내 부러질 때까지 기쁨의 하얀 뼈를 조심조심 깎는 중일까요.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요.

  

   소용없어요, 목의 길이를 조절해 봤자. 외투 속으로 목을 없애 봤자. 그래도 춥고, 그래도 커다란 덩치를 숨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떠나듯이.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또 한 번 찾았듯이.

 

 

             —『문학사상』200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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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파’뿐 거의 모든 젊은 시 입문용으로 이만큼 친절하고 겸손하고 앙증맞고, 섹시까지 한 작품이 없다. 하나가 기이하면, 하나를 기이하다고 보면 생의 당연이 순식간 기이의 도미노로 돌변한다.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가 의문인지 아닌지 애매할 정도로. 난해가 난해의 명징을 이루었으므로, 현실과 맞아떨어지므로, 사실 그대로이므로, 즉 진실이므로 젊음이 고전이라고도 하겠다.

 

  김정환(시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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