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알아보는 안목
빙하가 녹고 있어
꽃을 들고 서 있는 내 발밑이
곧 갈라질지도 몰라
바람은 언제부터 방향을 바꾸려
마음먹었던 걸까
짐을 든 사람들이
도착하자마자 떠나고 있어
꼭 내려야만 하는 정거장을 그냥 지나쳐
낯선 환승역까지 가버린 밤처럼
바람은 예측할 수 없지
어둠 너머 휘파람소리
보이지 않아도
나를 잘 아는 바람이 지나가고 있지
뾰족한 돌밭 사이로
발목을 꺾으며 춤을 추지
꽃으로 붙잡으려 하지 마
눈물로 멈추려고도 하지 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쉬지 않고 떠나가고 있어, 바람에 업힌 시간도
나를 파고드는 바람처럼 발이 저리고 있어
얼음이 우는 밤
얼음에도 숨구멍을 만든 건 누굴까
바람의 속도로 춤을 춰도 바람을 품을 수 없고
시간보다 먼저 가 기다려도 시간을 잡을 순 없지
발밑이 갈라지는 소리를 이명처럼 들으며
그저 서로의 언 발목을 얼핏 알아볼 뿐
『시인시대』2018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