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바람을 알아보는 안목/정채원

Beyond 정채원 2018. 3. 24. 12:01

바람을 알아보는 안목




빙하가 녹고 있어

꽃을 들고 서 있는 내 발밑이

곧 갈라질지도 몰라

바람은 언제부터 방향을 바꾸려

마음먹었던 걸까


짐을 든 사람들이

도착하자마자 떠나고 있어

꼭 내려야만 하는 정거장을 그냥 지나쳐

낯선 환승역까지 가버린 밤처럼

바람은 예측할 수 없지


어둠 너머 휘파람소리

보이지 않아도

나를 잘 아는 바람이 지나가고 있지

뾰족한 돌밭 사이로

발목을 꺾으며 춤을 추지


꽃으로 붙잡으려 하지 마

눈물로 멈추려고도 하지 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쉬지 않고 떠나가고 있어, 바람에 업힌 시간도

나를 파고드는 바람처럼 발이 저리고 있어


얼음이 우는 밤

얼음에도 숨구멍을 만든 건 누굴까


바람의 속도로 춤을 춰도 바람을 품을 수 없고

시간보다 먼저 가 기다려도 시간을 잡을 순 없지

발밑이 갈라지는 소리를 이명처럼 들으며

그저 서로의 언 발목을 얼핏 알아볼 뿐



『시인시대』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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