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구멍
정채원
과거로부터 온 나비가
내 이마에 살풋 앉는 아침
고요한 미열이 있다
두 개의 번개가 동시에 머리 위로 떨어져
사과를 꿰뚫는 구멍이 날 때
보이지 않던 것이 얼핏 보일 때
말랑거리며 머릿속을 관통하는 벌레가 있다
꿰뚫려도 통증을 모르는
피 흘려도 눈을 감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뚫으며
기차가 달려간다
울지마라 울지마라
사과가 끊임없이 꿈틀거려도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것
내가 백 년 달아나는 동안
네겐 한 계절이 흘렀다 해도
변하는 건 변하는 것
죽는 건
죽어서도 다시 날아오르는 것
갈 수 있는 끝에서 끝까지
존재하지 않는
터널을 뚫는 것,
아무도 노래하며 지나가지 않는다 해도
『시사사』2018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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