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기계
혀 위에 얹힌 그것이 신속하게 흩어지지 않고
분쇄됨을 주저하고 있었다
자연에 속하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냉동제
비자연이라는 개념을 상상해 낸 인간들에게서 나는 작은
따듯함을 느낀다
그와 같은 따듯함은 또한 거부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만
닫힌 구조를 생각하면 아름답다 완전히 폐쇄적인 구조 속
에서 냉매를 뿜는 죽음 기계를 생각한다
죽음 기계는 영원을 잊도록 영원히 연주되는 최초의 재생
장치이고 때문에 그것은 세기말의 골동품으로서 가치를 지닌
다, 따위
나는 생각하고 때문에
죽어 간다
자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깜빡 잠들었다
창밖을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언제나 꿈 대신 꿈의 정교함만을 상기시키는
로터리의 대회전이 있을때
돌처럼 혀가 굳을 것을 느끼며 좌석을 뒤로 젖혔다
오늘은 말하는 대신 볼 것이다
보고 또 보았던 풍경들을
시집 『사랑과 교육』, 민음사 2019
'책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최세라 시집 (0) | 2020.06.26 |
---|---|
늙은 낙타의 일과/이학성 시집 (0) | 2020.06.26 |
더 많은 것들이 있다/황인찬 (0) | 2020.06.09 |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정진혁 시집(파란 시선 0052) (0) | 2020.04.12 |
샌드 페인팅/박수현 시집 (0) | 2020.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