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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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최세라 시집

Beyond 정채원 2020. 6. 26. 01:48

   사이다 병 조각이 박힌 담장

 

 

   최세라

 

 

   당신은 나의 담장을 빌려서 다시 도둑고양이 두 마리에게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느라 담장 위에 꽃힌 칠성사이다 병 조

각은 모조리 깨어져 나가고 내 집의 망치와 끌과 사다리는 골

목 밖에 널브러졌어요 나는 비린 조기를 훔쳐 온 고양이들에

게서 고단한 입 냄새를 임차료로 받았습니다 밤에 정전이 찾

아온다면 가로등 대신 병 조각 대신 별들이 담장 위에 박힐 테

지요 당신은 내게 그것들을 조금 떼어줄 테지만 나는 우리 사

이에 잠깐 담 없었음만이 무한히도 기뻐서 밤새 한 걸음도 걸

어나가지 않고 컴컴한 안구 뒤로 기꺼이 침몰할 것입니다

 

 

 

시집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시와반시 기획시인선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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