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두 개의 인상/강인한 시집

Beyond 정채원 2020. 7. 14. 14:04

희게 말하고 희게 웃는다

 

아픔 위에 아픔을 붓는

밤의 크고 고요한 손을 본다.

누군가의 나직한 잠이 흐르고

 

잠 속으로 툭 떨어지는

빗방울이었다,

나는.

 

멀리서 가까이서 뿌옇게 내리는

가을의 분별,

회복할 수 없는 어둠을 토하며 지금

내 피는 닳는다.

 

새도록 떠다니는 잠의 바다여,

묵은 책갈피에 오래 파묻혔던

내 손은 눈을 뜬다.

목질의 가느다란 실핏줄과 물결 소리를

자욱이 풀어준다.

 

사물은

내 피가 닳는 저 어둠의 뒤에서

희게 말하고

희게 웃는다.

 

 

 

약수弱水에 갇히다

 

 

맑은 강물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 벽 속에 갇혀 있습니다.

 

ㅡ제발 나를 꺼내 주세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탈바가지들 기웃갸웃,

 

ㅡ아무도 없네.

 

투명한 벽을 지나 사람들 등 돌려 가버립니다.

 

 

*약수: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 속의 강.  길이가 3천 리나 되며

부력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제5회 전봉건문학상 수상시집『두 개의 인상』(현대시학 기획시인선 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