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치료법
박성준
가을이었다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의료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녀 행색을 한 여자가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갔다가
다시 그 문을 밀고 나온다
복잡해진 마음에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치아가 다 빠져나가도록 입을 사용했던 울음의 자리처럼
빈 마음에도 다른 이목구비가 생기고
내가 싫은 말을 해도 그 사람은 늘 다르게 알아주길 원했다
저마다 제 몸에 병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곳을 드나든다는 것
고작 내 그림자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전부였던 거라
땅을 치고 울던 내 눈물은 아무런 통증도 지구에는 가하지 못하고
무슨 말을 길게 하거나 줄여서 말해야 할 때
들키지 말아야 할 낯빛 같은 것들만 저렇게 흩어진다
생각은 생각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아픈 몸으로도 더 분주해진다는 사실만 남아
가만히 혀만 굴리며 의료원을 응시한다
동의할 수 없는 가을이었다
나는 아프지 말았어야 했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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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 2009년 《문학과사회》시, 2013년 《경향신문》평론 등단. 시집 『몰아 쓴 일기』『잘 모르는 사이』, 평론집 『안녕, 나의 페르소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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