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천연 치료법/박성준

Beyond 정채원 2025. 10. 31. 10:12

천연 치료법

 

  박성준

 

 

 

가을이었다 마을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의료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녀 행색을 한 여자가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갔다가

다시 그 문을 밀고 나온다

 

복잡해진 마음에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치아가 다 빠져나가도록 입을 사용했던 울음의 자리처럼

 

빈 마음에도 다른 이목구비가 생기고

내가 싫은 말을 해도 그 사람은 늘 다르게 알아주길 원했다

 

저마다 제 몸에 병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곳을 드나든다는 것

 

고작 내 그림자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전부였던 거라

땅을 치고 울던 내 눈물은 아무런 통증도 지구에는 가하지 못하고

 

무슨 말을 길게 하거나 줄여서 말해야 할 때

들키지 말아야 할 낯빛 같은 것들만 저렇게 흩어진다

 

생각은 생각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아픈 몸으로도 더 분주해진다는 사실만 남아

가만히 혀만 굴리며 의료원을 응시한다

 

동의할 수 없는 가을이었다

 

나는 아프지 말았어야 했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5년 10월호

---------------------

박성준 / 2009년 《문학과사회》시, 2013년 《경향신문》평론 등단. 시집 『몰아 쓴 일기』『잘 모르는 사이』, 평론집 『안녕, 나의 페르소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