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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내리는 비
구현우 폭우가 내린 날이었어 이별한 너를 생각한 날이기도 했다 빗물에 나의 집 나의 모든 방이 잠겼다는 게 믿어지니 믿기 어려웠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로서 도망쳐야 했어 그런데 어디로? 전국에 내리는 비래 우산을 든 손과 에코백을 든 손이 공평하게 젖었지 언더그리운드와 목공소를 지나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너는 와중에도 일인극은 계속되었다 이별한 날보다 이별한 너를 생각하는 날이 더 슬픈 까닭은 단지 방 안까지 물이 흘러들었기 때문이겠지 콘크리트에 칠해진 그라피티의 심정으로 사랑을 중얼거린다 사랑을…… 아니 사랑 같은 것을 중얼거린다 이런 빗소리가 배경음이 되어줬다면 헤어지기 전에 아무 얘기라도 했을 것 같아 해피엔딩은 없어 해피엔딩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뿐 한여름인데 춥고 비는 그치지 않았어 소름 끼칠 정도로 빈틈없이 쏟아지는 그날 의 비주류 음악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천변 카페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노트북과 에이드의 탄산과 기나긴 선잠 호주머니에 물이 들기만 했는데 아주 무거웠지 그런 상태로 한참을 걸었어 이 비는 계속될 것 같아 이 비가 계속 이어질 것 같아 마음과 영혼을 어떻게 구별하면 좋을까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침수된 그 집이 언덕에 있다 하면 다들 유령의 표정으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어 월간 《現代文學》2025년 11월호 ----------------------- 구현우 / 1989년 서울 출생. 2014년《문학동네》시 등단.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모든 에필로그가 나를 본다』『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 레드벨벳, 샤이니, 슈퍼주니어 들의 히트곡 가사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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