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물고기 나무 외/박성현

Beyond 정채원 2025. 11. 16. 10:54

물고기 나무

 

 박성현

 

 

물고기가 죽었다

모로 누워

깊이 잠에 든 모습이었다

 

인공 기포를 따라 흐르는

물길 이어받으며

연한 초록 이파리가 흔들렸다

 

물고기를 빈 화분에 옮겨 심었다

여물지 않은 흙더미에

강제로 이주한 것이지만 비늘이 녹으면서

갈퀴 모양의 잔뿌리가 생길 것이다

 

분갈이하듯

입원실로 몸을 옮겨 심는

나도 그러했다

 

화분에서 새어 나오는

은근한 빛이 한밤중의 거실을 비추었다

지느러미로 자박자박 흙을 밟는

낯선 기척이 들렸다

 

오늘은 이파리 세 개가 자랐다

레몬 모양의 잎은

가려운 듯 공중을 긁고 있었다

 

햇볕이 넓게 펴지자

물고기는 좀 더 남쪽으로 휘었다

따뜻한 방향이었다

 

      시집 그 언덕의 여름바깥의 저녁 2025.7.31

 ..........................................................................................................

 

   죽은 물고기가 화분의 꽃으로나무로 되살아난다면 어떨까한밤중 빛이 파닥이는 화분에서 나는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시를 읽고 난 뒤 자연히 ‘회복(回復)’이란 말을 떠올린다사전을 열어 보니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이란 뜻이 적혀 있다문득참 귀하다는 생각원래의 상태라는 것일상이라는 것별다른 탈 없이 흘러가는 오늘과 내일그러나 알고 있다보통의 하루하루는 언제든 어긋날 수 있고 ‘원래를 위협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언제든 벌어지게 마련이라는 사실그럴 때 “물고기 나무를 생각해야지죽은 물고기를 화분에 옮겨 심는 마음을재생(再生)의 희망을.

   돌연히 닥친 힘겨운 시간을 아주 무겁게무겁게 짊어지고 가면서도 누군가는 흙을 더듬는 어떤 지느러미의 기척을 느낀다햇볕이 넓게 퍼진 쪽으로 조그만 비늘을 반짝이며 쉼 없이 돋아나는 잎사귀를 누군가는 본다보고 만다.

 

  박소란 (시인)

 

 

 

 

 박성현

 

 

 

새가 날아와

곁에 앉았습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침이면 떠났습니다

어젯밤에는 새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리를 열었는데

당신이 웅크려 있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당신을 꺼냈습니다

차고 앙상한 팔과 다리가 쑥쑥 뽑혔습니다

당신이 없는 곳에 벼랑만 가팔랐습니다

당신의 팔과 다리를 들고

벼랑에 올랐습니다 몇 년이고

비와 눈과 바람을 짊어졌습니다

매일매일 새가 날아왔습니다

매일매일 웅크린 당신을 뽑아냈습니다

 

 

          계간 상상인 2024년 봄호

-------------------

박성현 / 1970 ~ 2025. 11. 15.   2009중앙일보신인문학상으로 시 등단.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그 언덕의 여름바깥의 저녁』.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리소설/이장욱  (0) 2025.11.27
곁에 없고/장철문  (0) 2025.11.20
가장 차가운 이미지/이병철  (0) 2025.11.07
전국에 내리는 비/구현우  (0) 2025.11.07
천연 치료법/박성준  (0)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