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채원 시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문학동네, 2019)
통증의 감각과 애도의 형식
이경수
가끔 지하철 계단 앞에서 아찔함을 느낄 때가 있다. 끝없이 아래로 이어질 것 같은 계단은 현기증을 동반하고 불쑥 다가와 어떤 상처와 마주하게 한다. 아물었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상처의 나락 속으로 떨어지며 구르고 있는 자신의 눈동자와 속수무책으로 마주쳐 버리기도 한다. “반쯤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끝없는 계단」)는 그의 정지된 눈동자는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된 그의 눈동자이거나 여전히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거의 눈동자일 수도 있겠다.
‘시인의 말’에서 고백했듯이, 정채원은 “안 보이는 걸 보려고,/ 가뭇없이 사라지는 걸 말하려고,/ 도망치듯/ 여기까지 왔다”. 그의 도피행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시를 통해 눈 하나 더 찾게 될까”라는 바람을 몰래 품은 채 “아프고도 황홀한 계단을/ 끝없이 굴러떨어져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쓰며 그는 통증을 견뎌왔을 것이다. ‘시인의 말’에도 등장하는 ‘아프고도 황홀한 계단’은 그가 여전히 굴러 떨어지고 있는 기억 속 상처의 계단이면서 동시에 오로지 시 쓰기를 통해 그 아픔을 황홀함으로 돌려놓는 시적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구르고 있지
여긴 어디쯤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아직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반쯤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언제쯤 나는 바닥에 닿을 수 있나
언제쯤 어혈을 풀 수 있나 나는
언제쯤 나를 다 쓸 수 있나
밥을 먹을 때도
동사무소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나는 끝없이 계단을 구르고 있지
그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문을 닫지 못하고 있지
—「끝없는 계단」 부분
정채원의 시에서 자주 출몰하는 계단은 과거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구불구불한 유년을 기어오르던 계단”(「방진막」)처럼 유년의 가파름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용한 시에서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은 청춘의 기억을 동반하기도 한다. 정채원의 시적 주체는 아직도 그 계단을 구르며 끝없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여긴 어디쯤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청춘에게 어울릴 법한 질문이지만 정채원 시의 주체는 아직도 청춘의 에너지를 기꺼이 감당하며 시를 쓰고 있다. 언제쯤 바닥에 닿을 수 있는지 묻는 시의 주체는 아직 상처투성이라 어혈을 푸는 날은 좀처럼 올 것 같지 않다. 바닥을 구르며 풀리지 않는 어혈을 지닌 채로 정채원 시의 주체는 시를 써 나간다. 어쩌면 정채원의 시가 아직도 긴장을 유지하며 젊은 감각을 보여주는 원천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채원 시의 주체는 젊은 날의 상처를 극복하고 안온한 현재를 누리고 있는 주체와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밀려드는 통증에 신음하고 있는 주체의 눈에는 그러므로 아프거나 죽음 가까이에 가 있는 인물들이 자주 포착된다. 밥을 먹고 동사무소에 가고 잠을 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에도 시의 주체는 “끝없이 계단을 구르”면서 아파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 병동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아물지 않는 상처와 통증 속에서 그의 시가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붉은 옷을 입고 누워 있다
복숭아나무 아래
나 어릴 때 당사주를 보신 엄마는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섬뜩하셨다지
그림 속에 누우면 죽는다 했는데
일찍 죽는다 했는데
누워 있어도
붉은 옷을 입었으니
죽는 건 아니라 했다지
늘 어딘가 아플 뿐
오른쪽으로 누우면 왼쪽 옆구리가 시리고
바로 누우면 가슴이 막막해
잠 못 들고 뒤척일 때마다
꽃들은 다투어 피어나고
칼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자르고
나를 스쳐지나가고
비 오듯 쏟아지는 꽃잎 아래
누군가 복숭아나무 곁을 지나며 말하지
잎새가 웅얼거린다고
가지가 자꾸 앓는다고
이따금 노래 소리로 들린다고
천 년 전 강가에서 들었던 그 비파 소리라고
한평생 도망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림 속에서
꽃 없는 엄동에만 나무 곁을 지나는 사람
비 온 뒤 떨어진 꽃잎만을 밟고 가는 사람
단물 흐르는 복숭아를 바구니 가득 따 담는 사람
각기 다른 자기만의 그림 속에서
나는 오늘도 바래진 붉은 옷을 입고
신음하며 누워 있다
해마다 천도가 주렁주렁 익어가는 나무 아래
—「제8병동-복숭아나무 아래」 전문
어릴 적 지독하게 앓아본 경험이 있다면 “붉은 옷을 입고” “복숭아나무 아래” 누워 있는 저 감각을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어릴 때 자주 아파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엄마”가 “당사주를” 떠올리며 “섬뜩함”을 느끼는 장면은 이 시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당사주의 예언대로, 일찍 “죽는 건” 피해갔지만 시의 주체는 “늘 어딘가 아”픈 신세가 된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왼쪽 옆구리가 시리고/ 바로 누우면 가슴이 막막해/ 잠 못 들고 뒤척일 때마다/ 꽃들은 다투어 피어”난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복사꽃과 아픈 몸으로 뒤척이는 혼곤한 비몽사몽의 상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림 같기도 하고 꿈결 같기도 한 풍경을 완성한다. “잎새가 웅얼거”리고 “가지가 자꾸 앓는” 소리는 시의 주체가 앓는 소리이자 복숭아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리이기도 할 텐데 그것이 “이따금 노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천 년 전 강가에서 들었던 그 비파 소리”까지 불러오면서 이 시는 천 년의 시간을 품고 복사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한평생 도망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림 속에” 갇힌 운명의 예감을 혼곤히 젖어 앓아누운 시간 동안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비몽사몽의 시간 속에서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경험을 이 시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천도가 주렁주렁 익어가는” 풍경으로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이 지독한 아름다움은 저 신음으로부터 오는 것이겠다.
고통에 예민한 만큼 정채원의 시에는 신체의 일부가 종종 등장한다. “단두대에서 잘려나간 뒤에도” “육 초간 껌벅였다는” “머리통의 두 눈”부터 “가슴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심장이 멎은 뒤에도 한동안/ 가족의 울음소리를 듣다 간다는” “귀”, “심장이 멎은 뒤에도” “잘려나간 시간을 껌벅이며 되뇔” “입술”(「머리에서 가슴 사이」)까지 몸의 구석구석 오래 아파 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 정채원의 시에서는 잘려나간 신체의 일부로 묘사된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입술’이다. 자주 출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적 주체의 고백과 관련된 신체 기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장이 멎은 뒤에도 입술은 두고두고
잘려나간 시간을 껌벅이며 되뇔 것이다
길이 식은 뒤에도 길의 기억은
문 닫은 카페 앞에 발길을 멈추고
슬픔의 맥박이 멈춘 뒤에도
귓속엔 먹먹한 돌멩이가 굴러다니고
눈 감아도 움푹 눈 뜨고 있는 어제의 웅덩이에 빠져
하늘은 깊어서 캄캄한가
오늘은 캄캄해서 아름다운가
머리통 속 흑백의 불덩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시간의 목에 칼금을 긋는 동안
가슴에 갇혀 퍼덕이는 날개가 있다
—「머리에서 가슴 사이」 부분
“심장이 멎은 뒤에도 입술은 두고두고/ 잘려나간 시간을 껌벅이며 되뇔 것”이라는 상상은 정채원의 시가 솟아나오는 원천을 짐작케한다. 정채원의 시는 오래 전 기억을 더듬으며 “두고두고/ 잘려나간 시간을 껌벅이며 되”뇌듯 쓰인다. “길이 식은 뒤에도” “문 닫은 카페 앞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길의 기억”을 정채원의 시는 잊지 않으려 한다. “슬픔의 맥박이 멈춘 뒤에도” 슬픔은 완전히 멎지 않고 “귓속엔 먹먹한 돌멩이가 굴러다”닌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시의 주체는 상처의 기억과 마주한다. 몸의 감각으로 남아 있는 통증은 잃어버린 시간, 상실한 대상을 기억하게 한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은 아직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정채원의 시는 “가슴에 갇혀 퍼덕이는 날개”의 아픔 속에 머물러 있고자 한다. “아직 향기를 기억하는 바람 속에/ 꽃잎의 웅얼거림이 환청처럼 밀려오고 밀려가”(「입술의 형식」)듯이 정채원의 시는 입술의 형식으로 저 환청을 받아 적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 보이는 걸 보려고,/ 가뭇없이 사라지는 걸 말하려고” 시의 주체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이따금 몸을 반 이상 물 밖으로 솟구친다
새끼를 낳으러
육천오백 킬로를 헤엄쳐온 어미 고래
물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거
살아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그곳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
새끼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그 혹등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
그것도 더 크면 알게 되겠지
어미는 새끼에 젖을 물린 채 열대 바다를 헤엄친다
그런 걸 알게 될 때쯤 새끼는
극지의 얼음 바다를 홀로 헤엄치며
어쩌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도 있겠지
코고는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울음소리 신음 소리가 섞여 긴 노래가 되고
예언처럼 멀고 먼 주름투성이 바다
뻔하고 모호한
젖은 몸뚱이는
이따금 물 밖으로 힘껏 솟구친다
다른 세상을 흘낏 엿보면서
그렇게 숨을 쉬면서
—「혹등고래」 전문
“새끼를 낳으러/ 육천오백 킬로를 헤엄쳐온 어미 고래”가 “이따금 몸을 반 이상 물 밖으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며 시의 주체는 새끼 고래가 어미 고래가 되는 긴 시간을 떠올린다. 어미가 세상의 전부인 시간을 지나, “물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 새끼 고래에게도 올 것임을 시의 주체는 경험을 통해 안다. “살아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그곳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것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그것이 “그 혹등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코고는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울음소리 신음 소리가 섞여 긴 노래가 되”는 시간을 “예언처럼 멀고 먼 주름투성이 바다”를 헤엄쳐 가며, 새끼 고래는 어미 고래가 되어갈 것이다. “다른 세상을 흘낏 엿보면서/ 그렇게 숨을 쉬면서” “이따금 물 밖으로 힘껏 솟구”치는 혹등고래의 모습은 마치 안 보이는 걸 보려 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하려 하는 정채원 시의 주체를 표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코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일은 끝내 오지 않는 날”임을, 그리하여 “내 책상, 내 의자, 내 사람은 예고 없이/ 주인 잃은 얼굴을 하고”(「귀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는 시의 주체는 생의 아이러니 앞에서 고통의 순간을 오래 응시하거나 한 발 떨어져 나와 일상의 고통을 딛고 다른 세상으로 도약하기를 꿈꾼다.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체험은 그 시간을 다 살아내지 않고는,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지 않고는 이겨낼 수 없음을 정채원의 시는 통증의 감각을 통해 말한다. 시 쓰기에 관한 시로도 읽을 수 있는 이번 시집은 정채원 시인에게 시 쓰기야말로 애도의 형식임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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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주요 저서로 ?불온한 상상의 축제?,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등이 있음.
월간『시인동네』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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