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의 어두운 밤
누가 끄다 말았을까,
연기 그림자를 밀어 올리는 모닥불,
누가 애써 처박았나,
반쯤 익은 돌멩이 몇 개
기도처럼 혹은 낯선 인사처럼
주머니를 뒤져 메모 한 장을 꺼낸다
북극권의 밤은 시리지도 않고
오히려 투명하게 아프다
내가 읽는 이 시는 눈 빨간 여우와
굶어 죽은 그의 새끼들을 위한 것이다
다른 늑대에게 잡아먹힌 목덜미 흰
새끼의 어미 늑대를 위한 노래다
시린 뼈 하나 입에 물고
들짐승처럼 짖는 거다, 우는 거다
차가운 말씀이 온 거리를 단단하게 결박할 때까지
몸속 뼈를 하나씩 추려내는 거다
빈손의 피는 슬쩍 바지춤에 문대고 웃는 거다
웃음으로 울음의 아흔아홉 굽이를 넘는 거다
누가 끄다 말았을까,
잡목 몇 개가 마지막 숨을 토하는 둥근 모닥불 앞,
오래된 책가방을 내려놓고
글자가 끊어지는 볼펜심에 연신
마른침을 바른다
내가 쓰는 이 시는 지독하게 어두운 밤의
송가(頌歌),
그래도 새벽은 밝아오겠지?
그래도 더 차가운 새벽은 밝아오겠지?
저녁의 이유
생명이란 가벼운 것이라서
꿈이라도 무겁게 꾸자고
밥과 꽃, 칼과 촛대를
늘 머리맡에 두고 잔다
아침 약을
해 저문 뒤 먹고
모아두었던 기침을 풀어
흐린 들창이나 뚫는다
어디든 나서고 싶지만
어디든 가보고 싶지만
생명이란 오래오래 눌려 배긴 결대로
풀어지고 해지는 것
꿈이란 끝자리 미열에 지나지 않는다
백인덕 시집 《북극권의 어두운 밤》, 시인동네 시인선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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