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352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전동균 시집

아침마다 낯선 곳에  전동균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촛불 같고 서리 같은 그 손이 누구 것인지더 이상 묻지 말자 기도하지도 말자, 더 외로워질 뿐이니 잊고 잊히는 일은 유정한 일이어서*나는 날마다사라지는 별의 꼬리에 매달려 춤추는 꿈을 꾸고아침마다 낯선 곳에 와 있고—저를 부르지 마세요, 저는 제 이름을 몰라요흩어진 알약, 멈춘 시곗바늘이 되고 얼어붙은 눈더미, 눈더미 사이로 빨강 모자들이 지나갔습니다 유리구슬 소리 낭랑하였습니다 발자국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 장옥관 시 「일요일이다」의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한 일이다”에서.

책소식 2024.08.12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이승희 시집

어떤 마음에 대하여     물속에 오동나무를 심는 마음이 있다 연꽃도 그런 마음 모란도 그런 마음 오리 두 마리도 그런 마음이어서    가만히 헤엄을 치게 하였다 그런 마음을 싣고 돛단배가 온다    마음에 무엇을 들이는 마음 그런 마음이 더욱 따뜻하여 소나무가 자란다 바위 속을 지나 지붕 끝을 지나간다 머리가 붉은 해에 닿고서야 편안해진다   지붕에는 매화꽃이 피었다 잘 모르는 마음인데 잘  알 것 같은 마음이다 마치 씨앗이 백 개나 된다는 유자가 막 벌어진 것같은데 어떤 논리 없이도 알 것 같다 이를테면 지금 여기는 너무 멀고 멀리 거기는 지금 내 앞에 와서 머무는 것 그런 것처럼없는 이가 자꾸 나를 보러 오는 것이니    물속에   연꽃은 연꽃이 아니고 모란은 모란이 아니고 복숭아는 복숭아가 아니어..

책소식 2024.08.05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정채원, -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중 퉁새할매 ・ 2024. 6. 24. 20:36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두개골 속 1.5킬로 고깃덩어리가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도대체 사랑이란 게 있긴 있는가이런저런 것들을 캐묻는다자다가도 묻고 울다가도 묻고,이 세상에 보이는 건 모두 가짜 아닐까이 얼음 같은 사탕도 착각 아닐까물질이 자유의지를 갖고 물질을 와드득 깨물고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꼬리에 꼬리를 무는이 또한 누구의 희미한 기억 속일까무중력의 공간을 달려가는 그리움은백만 미터고 천만 미터고 거침없이 계속 달려간다잡을 수가 없다, 그대여 슬픔이여내 육신은 고작 백 미터도 도망치지 못하는데생각의 꼬리에 매달려 캄캄한 우주를 홀로 유영하는나는 누구의..

책소식 2024.07.31

새까만 울음을 문지르면 밝은이가 될까/김밝은 시집

발라드 오브 해남 1   김밝은                    목소리만 남겨놓은 그 사람이 떠나갔다 유난히 길어진 눈썹달이발라드라도 한 곡 불러주고 싶은지전봇줄 레와 미 사이에 앉아 있다 채우지 못한 음계를바닷바람이 슬그머니 들어와 연주하면 허공을 가득 메운 노을과나만이 관객인 오늘 시가 내게 오려는지,그만 당신을 잃어버렸다  김밝은 시집 《새까만 울음을 문지르면 밝은이가 될까》, 지성의상상 041

책소식 2024.07.31

초원의 별/박우담 시집

네안데르탈 19  자작나무 숲을 걷고 있네아직 썰매 자국이 남아 있는 눈길누가 빚었을까무지갯빛으로 물든 내 마음기도 소리 울려 퍼지고질문이 질문을 낳는 길나 홀로 색색의 천을 쌓고 있네내 눈썹을 만지듯함박눈 날리네어디로 갈 것인가길이 내게 질문을 하네앞서간 발자국은내 속눈썹에 매달려 있네꿈이 길을 만들고 눈썰매는새벽을 당기네누구도 자신의 꿈에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지개 짖는 소리에색색의 천이 나부끼네속눈썹 사이로 풀어지는 꿈게르에 장작불이 타오르네길은 늘내 날개뼈 사이에 있네가까우면서 멀기만 한 길    낙태  푸른 사탕이가슴을 세게 때리네. 비가 오면가끔 첫사랑을 복기하지요. 묵은 꿈이녹아 흘러요.    박우담 시집 《초원의 별》, 도서출판 실천

책소식 2024.06.28

의자의 봄날/김수복 시집

나사의 귀   겨울나무와 봄나무 사이 새들과 허공 사이 아침과 저녁 사이 심장에 말뚝 박는 소리 화창하게 듣는다    시가 오는 봄날  서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비의 눈들이 쏠려 있다 눈가재미들이 몰려오니 연애시를 쓰기 위해 밤을 새웠다    천둥소리  왼편 가슴 아랫길 번개가 친다 길을 걷다가도 움찟움찟 멈춰 선다 당신이 다 타버린 하늘에 풍등이 켜지고 있다는 통증인가    폭포  자꾸 말을 걸고 싶다 기억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소나기가 목을 매달았다 사랑이란 다 이런 거 아니었던가요   김수복 시집 《의자의 봄날》, 서정시학 서정시 151

책소식 2024.06.18

열대야/정채원 디카시집

열대야Tropical nights정채원 무엇으로 식힐까                        What a sleepless night!잠 못 드는 밤                            What should I cool it down with.열에 들뜬 내 이마를 짚어줄         Cool stream of news,시원한 한 줄기 소식,                  To cool down my feverish forehead.어디쯤 달려오고 있을까              Where are they now? - 정채원 디카시집 『열대야』 (작가) 중에서 출처 : 쿨투라(http://www.cultura.co.kr)   한국디카시 대표시선 15 《열대야》, 정채원 디카시집, 작가

책소식 2024.06.05

기분을 다 써 버린 주머니/황려시 시집

가래나무     새를 위해서 팔을 뻗으며 새를 위해서 흔들리며 다만 새를 하늘로 던지며 그 자리에 서 있다 서성인다    뛰어내려라    겁 많은 새를 위해서 고마음을 조금 모르는 새를 위해서유모차를 끌고 그늘로 모이는 사람들    이파리 하나가 해의 턱선을 가리고 양팔을 접고 있다 눈뜨고 자던 바람도 새를 위해서 그냥 새만을  위해서 더  큰나무에 갇히고    나무는 두리번거리며 날개처럼 퍼드득거리며 잠든 새를찾는다 어두워서 더 커지는 숲    슾은 새 속으로 사라진다     시집 《기분을 다 써 버린 주머니》, 파란시선 0140

책소식 2024.05.25

Mazeppa/김안 시집

Mazeppa  김안   나는 듣는다.토끼가 겨울나무를 파먹는 소리,얼어버린 눈동자가 물결처럼 갈라지는 소리.나는 듣는다, 술로연명하다 굶어 죽은 시인의 창밖으로 계절처럼전진하던 기차 소리,그 소리에 밤하늘의 불꽃이 흔들리고.낭만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과,죽은 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벌레의 날갯소리,듣는다.음독이 묵독이 되는 소리,기억을 잃은 이들이 거울 앞에 서는 소리,나는 실패하고,나는 전진하기에,이것은 나의 몫이므로. 들판에는 머리만 남겨진 비둘기창문에는 멍든 구멍들오만과 부끄러움죄의식과 편견무능과 순수게으름과 욕망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새로 추가된 약의 이름을 생각한다.약의 개수만큼 손가락을 접는다.남겨진 손가락을 접는다.남겨진 손가락을 ..

책소식 2024.05.24

시인하우스/현대시학

메두사의 아름다움 김연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낮이 끝나고 밤이 시작되는 그순간에 누가 당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가당신은 파란 가운으로 머리를 가린성 처녀가 아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메신저처럼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처럼영원히 새로 태어났다사라져 가는 형식을 지니고당신은 현재에만 그 윤곽을 드러낸다 한밤의 항구 냄새를 담은 머리칼불로 달궈놓은 글자처럼피와 뼈에 새겨진 이름그 먼 곳이 당신을 지나 나에게 도달한다 모래 위에 부는 바람처럼 우리는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고당신의 복부에 자리 잡은 노래들당신의 잠꼬대는 내 꿈에서 나온다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하는 당신의 피그 피로 날개 달린 말을 낳고하루에 수만 가지로 모습이 변해도인간성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한당신의 변신 당신을 알아보는..

책소식 2024.05.21